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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처음 이 영화를 틀었을 때 그냥 흘려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제목도 그렇고, 예고편도 평범한 복수극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영화 스위트걸은 아내를 잃은 남자의 복수극인 줄 알았는데, 끝까지 보고 나면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복수극 서사, 어디서 출발하는가
저는 액션 영화를 꽤 많이 봐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장르가 주로 어떤 구조를 가지는지 대강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주인공이 분노하고, 복수한다. 이 공식이 반복됩니다. 스위트걸도 표면적으로는 같은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레이는 암을 앓는 아내를 위해 치료비를 감당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값비싼 항암제의 복제약(제네릭 의약품)이 출시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여기서 제네릭 의약품이란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된 이후 동일한 성분으로 제조된 복사본 약을 의미합니다. 오리지널보다 훨씬 저렴하게 공급될 수 있어 저소득층 환자들에게는 사실상 생존의 열쇠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바이오 프라임이라는 제약 회사가 이 복제약 출시를 방해합니다. 결국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아내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분노보다는 허탈함이었습니다. 시스템이 사람을 죽였다는 느낌이랄까요. 단순히 악당이 있어서 죽은 게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거대 구조 안에서 한 사람이 조용히 소멸해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 의약품 접근성 문제는 허구가 아닙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이 필수 의약품에 제때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이 현실을 드라마 장치로만 쓴 것인지, 아니면 진지하게 다루려 한 것인지가 이후 전개를 평가하는 핵심이 됩니다.
반전 구조, 긴장감을 높이는가 흐트러뜨리는가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반전 없이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후반부에 드러나는 반전은 이야기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버립니다. 레이라고 생각했던 주인공이 사실은 딸 레이첼이었고, 그동안 벌어진 일들은 모두 그녀가 저지른 것입니다. 레이는 지하철에서 킬러에게 칼에 찔려 이미 죽은 상태였고, 레이첼이 아버지인 척 복수를 이어온 것입니다.
이 구조는 내러티브 반전(Narrative Twist)이라는 영화적 기법을 활용한 것입니다. 내러티브 반전이란 관객이 이야기 내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전제를 결말 부근에서 완전히 뒤엎는 서사 기법으로, 식스 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 같은 작품이 대표적입니다.
제가 솔직히 이 반전을 처음 봤을 때, 감탄보다 의문이 먼저 들었습니다. 개연성이 조금 걸렸거든요. 어린 레이첼이 경호원들을 제압하고, 킬러와 격투를 벌이고, 치밀한 작전을 세운다는 설정이 감정적으로는 이해되지만 현실적으로는 납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건 영화적 허용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반전이 서사를 풍부하게 만드는지 평가할 때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복선의 밀도입니다. 복선이란 결말을 향해 관객에게 미리 단서를 흘려두는 서사적 장치로, 반전 이후에 앞선 장면들을 다시 돌아봤을 때 "아, 이게 그래서였구나"라는 납득이 와야 합니다. 스위트걸의 반전은 충격은 주지만 복선이 촘촘하지 않아서, 되짚어보면 다소 허술한 느낌이 남습니다.
스위트걸이 아쉬운 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내의 죽음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도입부에서 꺼내놓고 이후 개인 복수극으로만 소비한 점
- 반전을 위한 복선 설계가 충분하지 않아 설득력이 부족한 점
- 레이첼의 신체 능력과 판단력이 현실감보다 영화적 편의에 치우친 점
- 바이오 프라임과 국회의원 다이애나의 비리 구조가 단순하게 처리된 점
카타르시스, 복수는 끝났지만 무언가 남는다
레이첼은 결국 다이애나로부터 자백을 받아냅니다. 죽이지 않고 녹음된 자백을 언론에 넘기는 방식으로 복수를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해외로 떠나며 영화는 끝납니다. 저는 이 마무리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비극을 통해 관객이 내면의 감정을 분출하고 정서적 해소를 경험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복수극이 주는 쾌감의 본질은 바로 이 카타르시스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쾌감은 주인공이 적을 처치하는 순간보다, 오히려 그 이후의 공허함을 어떻게 다루느냐에서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복수를 끝낸 뒤 허탈하게 앉아있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영화와, 그냥 승리로 마무리하는 영화는 여운의 깊이가 다릅니다. 스위트걸은 레이첼이 해외로 떠나는 장면으로 끝내는데, 이 열린 결말이 복잡한 감정을 남겨줍니다. 복수는 성공했지만 아빠도, 엄마도 없어진 그녀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장르 분석 자료에 따르면 복수극 장르는 관객의 대리만족 욕구와 사회적 분노를 가장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장르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장르는 단순히 재미를 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어떤 메시지를 남기느냐에 따라 작품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스위트걸은 그 지점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봅니다. 복수의 통쾌함은 전달됩니다. 하지만 의약품 접근성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처음에 꺼내놓고 끝까지 붙들지 않은 것은 아쉽습니다.
액션 장르에서 카타르시스를 원하신다면 스위트걸은 충분히 볼 만한 작품입니다. 다만 사회적 메시지를 기대하고 접근하셨다면 중반 이후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미리 알고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한 번쯤 눌러볼 가치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