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범죄 액션 영화에서 진짜 웃음이 터진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긴박한 추격전과 어두운 조직 세계가 배경인 장르에서 코미디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영화 정보원을 보고 나서 그 생각이 꽤 크게 흔들렸습니다. 강등을 밥 먹듯 당하는 형사와 딴짓만 하는 정보원이 엮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인간 냄새가 진하게 났습니다.
혐관 케미스트리, 진짜 웃기려면 진짜 같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범죄 장르에서 형사와 정보원의 관계는 팽팽한 긴장감과 위계 구조로 묘사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직장 생활을 할 때 저와 정반대 성격의 동료와 한 팀이 된 적이 있었는데, 그 관계는 긴장이라기보다는 매일 소소하게 치고받는 혼돈에 가까웠습니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정작 위기의 순간에는 본능적으로 서로의 등을 맡기게 되는 그 기묘한 연대감. 영화 정보원의 오남혁과 조태봉이 딱 그랬습니다.
이 영화에서 두 인물의 관계를 보여주는 방식은 '앙상블 코미디' 구조를 따릅니다. 앙상블 코미디란 한 명의 영웅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대신, 개성이 뚜렷한 여러 인물이 충돌하고 협력하면서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오남혁 역의 허성태 배우는 이 구조 안에서 짠내와 웃음을 동시에 끌어내는데, 제가 직접 극장에서 보면서 실제로 소리 내어 웃은 장면이 서너 개는 됩니다. 특히 납치에서 간신히 탈출했다가 금세 또 발각되고, 이번엔 고라니 때문에 사고를 당하는 연속 불운의 흐름은 웃기면서도 그 인물이 정말 처량하게 느껴질 만큼 짜임새 있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조태봉 역의 조재윤 배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보원으로 심어놓은 조직 안에서 몰래 자금을 빼돌리며 개인 수익을 챙기는 인물인데, 능글맞고 자기 계산이 빠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엉뚱하게 의리를 드러냅니다. 이 캐릭터 설계는 '피카레스크(picaresque)' 서사 방식과 닿아 있습니다. 피카레스크란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심지어 약간 악한 주인공이 세상의 부조리 속에서 살아남아 가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태봉은 전형적인 영웅이 아니라 살아남는 방법을 아는 인물이고,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두 인물이 만들어내는 케미스트리는 제가 과거에 함께 고생했던 그 동료의 뒷모습과 겹쳐 보여서, 단순히 웃기다는 것 이상의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억울한 오해로 함께 문책을 당했던 그때의 기억처럼, 극 중 두 사람도 오작교 프로젝트 실패로 사이좋게 강등을 당한 전력이 있습니다. 웃음 뒤에 그런 감정이 깔려 있으니, 단순 오락 영화 이상의 여운이 남았습니다.
범죄 액션 코미디, 톤 밸런스는 얼마나 성공했나
범죄 액션 코미디라는 장르 혼합은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일반적으로 코미디를 섞으면 긴박감이 희석되고, 반대로 액션과 서스펜스를 강조하면 웃음이 죽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문제는 국내 작품에서 특히 자주 나타납니다. 그런데 정보원은 이 균형을 꽤 영리하게 잡으려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만 완벽하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이 영화는 밀수 조직, 건설사 비리, 경찰 내부의 커넥션이 복잡하게 얽히는 다층적 플롯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층적 플롯이란 여러 세력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충돌하면서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전개되는 방식을 말합니다. 황상길이라는 건설사 회장, 그와 결탁한 경찰서장, 밀수 조직, 그리고 308호 조직까지 얽히는 구조는 분명 설계 자체는 탄탄합니다. 그런데 이 복잡한 세력 관계를 코미디 리듬 안에서 소화하다 보니, 중반부 일부 서사가 다소 산만하게 흐르는 구간이 생깁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이 사람이 지금 어느 편이지?'라고 잠깐 헷갈린 순간이 한두 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충분히 납득됩니다. 제24회 뉴욕 아시안 영화제(New York Asian Film Festival)의 개막작으로 초청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합니다. 뉴욕 아시안 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의 다양성과 완성도를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하는 권위 있는 행사로, 개막작 선정은 작품의 오락성과 예술적 가능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흥행과 작품성의 관계를 살펴보면, 한국 범죄 코미디 장르는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꾸준히 관객을 모으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범죄 및 액션 장르는 국내 극장 관객의 선호 장르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코미디 요소가 결합된 작품일수록 20~40대 관객층의 반응이 긍정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특히 좋게 본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허성태, 조재윤 두 주연의 앙상블 케미스트리가 극의 에너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다.
- 형사와 정보원이라는 관계를 코미디 문법으로 풀어낸 방식이 기존 범죄 영화와 차별화된다.
- 명품 조연 배우들의 캐릭터 묘사가 세계관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 피카레스크 서사 특유의 불완전한 주인공들이 오히려 현실적인 공감을 끌어낸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사건 해결의 일부 과정이 캐릭터의 능동적인 선택보다 우연한 상황에 기대는 경향이 있고, 톤이 급격히 전환되는 몇몇 장면에서 몰입이 잠깐 끊기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는 장르 혼합(genre hybrid) 영화가 공통적으로 안고 가는 구조적 과제이기도 합니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무겁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허술하지 않은 영화를 찾는다면 정보원은 꽤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것입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나에게도 저런 악연 하나쯤 있었나' 생각해보게 됐는데, 그 감각 자체가 이 영화가 단순 오락 이상의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12월 3일 전국 극장 개봉이니, 연말 분위기에 맞춰 한번 가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