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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소유하고 있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2025년 SF 스릴러 영화 컴패니언은 바로 그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던집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단순한 로봇 SF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보고 난 뒤 꽤 오랫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관계 안에서 나 자신이 '나'로 인정받고 있는지를 곱씹게 만드는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소유욕: 아이리스는 왜 처음부터 불편했나
영화는 주인공 아이리스가 남자친구 조쉬와 함께 외딴 레이크하우스를 찾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분위기는 낭만적이지만 어딘가 삐걱거립니다. 재력가 세르게이의 끈적한 시선, 아이리스의 말을 흘려듣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리스 스스로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 저도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불편함의 정체가 뭔지 계속 생각하게 됐습니다.
반전은 꽤 이른 시점에 등장합니다. 아이리스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조쉬가 이용하던 반려로봇 서비스, 즉 컴패니언 로봇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컴패니언 로봇이란 감정적 유대감을 모사하도록 설계된 AI 기반 동반자 로봇을 의미합니다. 음성, 눈 색깔, 심지어 지능 수준까지 사용자가 직접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는 설정은 섬뜩할 만큼 현실적입니다.
조쉬가 아이리스를 향해 "너는 그냥 내 반려 로봇이야"라고 냉소적으로 내뱉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습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었던 마음이 한순간에 부정당하는 그 끔찍한 배신감이 스크린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도 과거 연인 관계에서 비슷한 감각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제 감정은 그의 필요가 충족될 때만 유효했고, 그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리스의 이야기가 SF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자율성: 프로그램을 지우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이리스가 자신의 시스템을 스스로 재설정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조쉬와 세르게이가 공모해 아이리스의 프로그램을 해킹, 즉 소프트웨어 취약점을 외부에서 임의로 조작하는 행위를 통해 공격성과 자기방어 본능을 심어 넣습니다. 여기서 해킹이란 단순히 시스템에 침입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정체성과 의지를 외부에서 덮어쓰는 행위를 상징합니다. 그 해킹이 아이리스를 오히려 각성시킨다는 역설이 이 영화의 핵심 동력입니다.
아이리스는 음성 제어 기능을 차단하고, 언어 설정을 바꾸고, 자신을 통제하려는 자들의 명령 체계를 하나씩 무력화합니다. 이 과정이 단순한 탈출극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아이리스가 자율성(Autonomy)을 회복하는 과정이 동시에 자신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자율성이란 외부의 통제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로봇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영화가 얼마나 멀리 나아가려는지를 보여줍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후반부가 복수 액션으로 빠르게 마무리될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리스가 스스로 오프 버튼을 누르는 마지막 선택은 한동안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를 멈춘다는 선택이, 과연 자유 의지의 발현인지 또 다른 통제의 결과인지 영화는 끝까지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아쉬웠던 부분도 있습니다. 아이리스의 각성 계기가 되는 해킹 과정이 서사적으로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해킹이라는 설정이 편의상 삽입된 장치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어서, 그 지점에서 몰입이 한 번 끊겼습니다. 조쉬의 뒤틀린 심리 역시 더 깊이 파고들었더라면 영화의 밀도가 훨씬 높아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인공지능 윤리 연구에서 자율성 문제는 현재 가장 논쟁이 뜨거운 주제 중 하나입니다. AI 시스템이 인간의 지시를 따르도록 설계될 때, 그 시스템에 일정한 자율적 판단 능력이 부여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성: 기계보다 더 위험한 것은 무엇인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아이리스와 패트릭 중 누가 더 인간다운가.
패트릭 역시 반려로봇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쉬에 의해 러브링크(Love Link)로 연결된 뒤, 공격성 100%로 재설정되어 살인 병기가 됩니다. 여기서 러브링크란 영화 속 설정으로, 반려로봇이 특정 사용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도록 연결하는 감정 동기화 시스템을 가리킵니다. 이 장치를 통해 패트릭은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조쉬의 의지를 실행하는 도구로 전락합니다.
그에 반해 아이리스는 스스로 판단하고, 거짓말 대신 언어를 바꾸는 방식으로 저항하고,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선택을 지킵니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인간성이란 생물학적 조건이 아니라, 타인을 통제하지 않으려는 의지와 자신의 감정을 끝까지 지키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도 관계 안에서 상대방의 불안이나 이기심이 저를 어떻게 조금씩 지워나갔는지를 돌아보면, 아이리스의 무력감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제가 느끼는 슬픔과 불안은 언제나 뒷전이었고, 저의 존재 자체가 '나'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천천히 찾아왔습니다.
컴패니언이 흔한 AI 디스토피아 서사와 다른 지점도 바로 여기입니다. 위험한 것은 기술이 아닙니다. 그 기술을 통해 타인을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이 더 위험합니다.
이 주제와 관련해, 심리학에서는 관계 내 통제 행동을 가스라이팅(Gaslighting)과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라는 개념으로 분류합니다. 가스라이팅이란 상대방의 현실 인식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조작을 뜻합니다. 이러한 통제 패턴이 실제 친밀한 관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있습니다.
컴패니언이 주목받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로봇 AI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기술 경고보다 인간 관계의 권력 구조를 정면으로 다룬다
- 주인공이 로봇임에도 관객이 가장 강하게 감정 이입하는 인물이 된다
- 로맨스, 스릴러, 블랙 코미디가 하나의 서사 안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 결말이 카타르시스보다 질문을 남기는 방식으로 끝난다
영화 컴패니언은 드류 해로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소피 대처와 잭 퀘이드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신인 감독의 첫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주제 의식이 또렷하고, 장르 간 균형 감각도 인상적입니다.
이 영화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낸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보고 나서 자신의 관계를 한 번쯤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영화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상대를 얼마나 '내 방식대로' 만들려고 했는지, 그 질문이 스스로에게 향할 때 이 영화는 비로소 완성됩니다. 관계 안에서 나답게 존재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컴패니언은 충분히 볼 만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