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어릴 적 마음에 품었던 작은 상처나 서운함이 어른이 되어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와 마음을 흔들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도 누군가의 차가운 말 한마디나 무관심 속에서, 문득 마음 한구석의 어린아이가 홀로 방치된 것처럼 서러워지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저 역시 과거에 마음의 여유가 없던 부모님이나 팍팍한 현실 속에서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남모를 외로움을 속으로 삼키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느꼈던 것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지독한 고립감과 '내가 뭔가 잘못해서 이런 대우를 받나'라는 뿌리 깊은 자책감이었습니다.브라질의 명작 소설을 영화화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My Sweet Orange Tree)'는 다섯 ..
살다 보면 눈앞의 불의나 부조리를 뻔히 보면서도, "나 하나 조용히 지내면 피곤할 일 없겠지"라는 마음으로 침묵을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직장이나 일상에서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눈을 감았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저 역시 과거에 조직 내 부당한 상황을 목격하고도 불이익이 두려워 입을 꾹 다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것은 정의감의 실종이 아니라, 침묵이 가져다주는 비겁함에서 오는 지독한 자기혐오였습니다.알폰소 테일러 감독의 영화 '헬프(The Help)'는 1960년대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의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인종차별이라는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각자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침묵을 깨기로 결심한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겉보기에는 백인 가정부와 흑인 가정..
아침에 눈을 뜨고, 가족과 인사를 나누며, 평범하게 출근을 하는 일상. 우리는 이 당연해 보이는 하루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예고도 없이 거대한 파도처럼 삶을 덮치는 위기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병, 예상치 못한 경제적 타격,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 일들 말이죠. 과거의 저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건강상의 큰 위기를 겪었을 때, 세상이 멈춘 듯한 공포와 함께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지독한 무력감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2012년에 개봉한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영화 은 2004년 동남아시아를 덮친 사상 최악의 쓰나미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한 가족의 실화를 다룬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재난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데..
살다 보면 마치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내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우주 미아가 된 것 같은 지독한 공허함과 단절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과거의 저 역시 소중한 관계를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졌을 때,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채 혼자만 어두운 물속에 잠겨있는 듯한 기분을 겪었습니다.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고요한 침묵 속으로 영원히 도망치고 싶었죠.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13년 작 영화 는 겉보기에는 우주 공간에서 조난당한 우주비행사의 생존기를 그린 SF 재난 영화입니다. 하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 영화는, 끔찍한 상실(어린 딸의 죽음)을 겪고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한 인간이 어떻게 다시 지구(현실)로 돌아와 두 발로 서게 되는지를 완벽하게 은유한 '트라우마 극복의 마스터피스'입니다. ..
"합시다, 러브. 나랑. 나랑 같이." 김은숙 작가의 tvN 드라마 은 구한말,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하고 불꽃처럼 스러져간 이름 없는 의병들의 이야기를 그린 대서사시입니다. 방영된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수많은 시청자들의 인생 드라마로 꼽히며,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 오면 정주행을 시작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작품이죠.우리는 왜 이토록 가슴 아픈 새드 엔딩(Sad Ending)을 알면서도 이 드라마에 깊이 몰입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남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나 애국심을 강요하는 뻔한 역사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는 각자의 지독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자신을 버린 세상을 향해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맞서 싸우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심리 보고서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