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팀장이 조용히 저를 따로 부르던 그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십 년 넘게 다닌 회사였는데, 짐 박스를 받아 들고 엘리베이터를 내려오던 그 몇 분이 인생에서 가장 길었습니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보는 내내 그 날의 감각이 자꾸 되살아났고, 씁쓸한 웃음과 뜨끔한 공감이 번갈아 찾아왔습니다.해고라는 도끼, 영화 속 구조조정의 민낯영화는 주인공 유만수가 한여름 마당 바베큐를 즐기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안정된 직장, 넓은 집,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들, 반려견까지. 그가 "지금 내 기분이 어때? 좋아?"라고 말하는 순간, 관객은 이미 불길한 예감을 갖게 됩니다. 행복감이 정점에 달할수록 추락의 낙차가 크다는 건, 살면서 한 번이라도 벼랑 끝에 서본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아는 사실이니까요. 만수..
2004년 개봉해 256만 관객을 동원하고, 일본에 역수출되어 300만 명을 넘기며 한국 영화 일본 흥행 1위를 약 15년간 지킨 영화가 있습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정우성과 손예진의 비주얼에 먼저 감탄했지만, 영화가 끝나고 오래 머릿속을 맴돈 건 그 얼굴들이 아니었습니다.내 머릿속의 지우개와 조발성 알츠하이머영화는 사내 불륜의 끝을 쓸쓸하게 마주하는 여자 김수진의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기차역에서 혼자 기다리다 홀로 돌아오는 그 첫 장면이, 사실 영화 전체 정서를 압축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후 수진은 편의점에서 우연히 목수 최철수를 만나게 되고, 어딘가 엉뚱하면서도 진심이 넘치는 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듭니다.제가 직접 봐보니, 두 사람의 로맨스가 설득력을 갖는 건 연출의 화려함 때문이 아니었습..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멜로의 왕자로만 알고 있던 현빈이 서늘한 눈빛으로 인질을 협박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저는 극장 좌석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영화 은 대한민국 최초로 위기협상관이라는 직업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입니다. 초반부의 팽팽한 심리전은 분명히 인상적이었지만, 끝까지 그 긴장을 유지했는지는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소개팅 중에 현장 투입, 첫 장면부터 달랐다저도 처음엔 이 영화가 로맨스 코드를 섞은 가벼운 범죄물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현빈과 손예진이라는 조합이 주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프닝 시퀀스가 시작된 지 채 5분도 안 돼서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영화는 위기협상팀 소속 하체윤이 소개팅 도중 급하게 현장에 호출되는 장면으로 문을 엽니다. 복장은 말끔한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