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부산행을 처음 봤을 때, 옆자리 관객이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화면을 훔쳐보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는 그 공포의 문법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밀어붙입니다. 단순히 빠르고 무서운 좀비가 아니라, 학습하고 연결되고 진화하는 존재로서의 감염체. 이게 왜 더 섬뜩한지, 영화 속 과학적 설정을 중심으로 짚어보겠습니다.집단지성, 뇌 없이도 최적화된다군체에서 감염체들이 무서운 이유는 속도가 아닙니다. 저는 처음에 단순히 "진화하는 좀비"라는 마케팅 문구를 반쯤 흘려들었는데, 영화가 끌어오는 생물학적 근거를 확인하고 나서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영화는 황색망사점균을 핵심 모티프로 사용합니다. 황색망사점균이란 단세포 생물임에도 먹..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코미디인 줄 알고 웃다가, 어느 순간부터 웃음이 멈추는 경험을 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은 계급 갈등과 빈부격차를 코미디와 스릴러 문법으로 동시에 풀어낸 작품으로,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관왕을 차지하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세계에 각인시킨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가 구축한 공간 구조와 서사 전략을 중심으로, 제가 느낀 인상과 함께 냉정하게 뜯어보겠습니다.반지하에서 지하실까지, 계급을 설계한 공간 구조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강하게 와닿은 건 대사도, 연기도 아니라 공간이었습니다.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 박 사장네 대저택, 그리고 아무도 몰랐던 지하실. 이 세 개의 공간이 수직으로 쌓이는 순간, 영화가 무슨..
왕이라는 자리가 가장 외로운 자리라는 걸, 영화 한 편이 단번에 납득시켰습니다. 영화 은 1777년 정조 즉위 초, 단 하루 밤에 벌어진 암살 시도를 중심으로 왕의 생존과 고독을 그린 작품입니다. 처음 화면이 켜졌을 때, 저는 이게 단순한 역사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고독한 왕: 살아남기 위해 칼을 갈던 정조의 내면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조가 무섭도록 외롭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왕이면서도 가장 취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아들로 태어나 정치적으로 낙인찍힌 채 왕위에 오른 정조는, 즉위 직후부터 끊임없는 시해(弑害)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여기서 시해란 왕이나 군주를 살해하려는 행위를 뜻하며, 조선 후기 정치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극단적 권력 투쟁의 형태입니..
노 웨이 홈 엔딩에서 극장을 나오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피터가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주문을 부탁하는 장면에서부터 이미 가슴이 내려앉기 시작했는데, 막상 MJ와 네드가 피터를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에서는 진짜로 멍해졌습니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브랜뉴 데이가 7월 29일 개봉합니다. 노 웨이 홈이 남긴 자리에서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인 만큼, 삼부작의 맥락을 짚고 가면 감상의 밀도가 달라집니다.모든 걸 잃은 피터, 그 출발선의 의미솔직히 처음에는 이 설정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심지어 멘토였던 토니 스타크조차 없는 상태에서 혼자 뉴욕을 지킨다는 게 과연 설득력 있게 그려질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거든요.그런데 홈커밍부터 노 웨이 홈까지 다시 흐름을 짚어보면, 이 결말..
통쾌한 사이다 전개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진 적 있으십니까? 저는 넷플릭스 '참교육'을 보면서 딱 그 감정을 겪었습니다. 학교 폭력과 교권 침해를 정면으로 건드린 이 드라마,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쇼 1위에 오르며 이미 화제가 된 작품이지만 막상 화면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카타르시스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남습니다.현장을 살린 애드립, 드라마를 완성한 비하인드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대본 밖에서 탄생한 장면들이었습니다. 오화 초등교사 에피소드에서 나화진이 1학년 급식 지도를 하는 장면, 기억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아이들이 방울토마토를 하나둘 나화진 손에 쥐여주던 그 장면은 사실 "방울토마토를 달라"는 디렉션 하나에서 즉흥으로 펼쳐진 상황이었습니다. 아이 한 명이 먼저 "저 방울토마토 싫어요..
저도 처음엔 그냥 가볍게 볼 생각이었습니다. 로드뷰 화면에서 귀신이 포착된다는 설정이 신선해 보였고, 평소 지도 앱으로 낯선 동네를 탐색하는 취미가 있는 저로선 시작부터 묘하게 끌렸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무심코 스마트폰 지도 앱을 켰다가 로드뷰 화면 구석에서 뭔가 스산한 기운을 느끼고 황급히 내려놓았습니다. 그 여운이 꽤 오래 남았습니다.로드뷰 공포 : 일상 디지털 공간이 공포의 무대가 되다살목지가 다른 한국 공포영화와 구별되는 지점은 소재의 선택에 있습니다. 로드뷰(Road View)란 구글 스트리트뷰나 네이버 지도처럼 실제 도로를 주행하며 360도 촬영한 파노라마 이미지를 온라인 지도에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우리가 매일 아무 생각 없이 클릭하는 그 화면 말입니다. 영화는 바로 이 친숙한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