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처음 이 영화를 틀었을 때 그냥 흘려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제목도 그렇고, 예고편도 평범한 복수극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영화 스위트걸은 아내를 잃은 남자의 복수극인 줄 알았는데, 끝까지 보고 나면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복수극 서사, 어디서 출발하는가저는 액션 영화를 꽤 많이 봐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장르가 주로 어떤 구조를 가지는지 대강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주인공이 분노하고, 복수한다. 이 공식이 반복됩니다. 스위트걸도 표면적으로는 같은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레이는 암을 앓는 아내를 위해 치료비를 감당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값비싼 항암제의 복제약(제네릭 의..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극장 불이 꺼지고 FBI가 장명준을 체포하는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아, 이거 그냥 웃기려고 만든 영화 아니겠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러닝타임 내내 웃으면서도 묘하게 긴장을 놓지 못했습니다. 남·북·미 세 나라 형사가 한 팀이 된다는 설정이 이렇게까지 먹힐 줄은 몰랐습니다.삼각공조가 만들어낸 예상 밖의 케미처음 림철령(현빈)과 김진태(유해진), 그리고 FBI 요원 잭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목적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고, 서로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손발을 맞춰야 하는 상황. 돌이켜 보면 제가 직장 초년 시절 전혀 다른 부서 사람들과 억지로 팀 프로젝트를 꾸려야 했던 기억이 슬쩍 겹쳤습니다. 뭔가 통하는 구석이 있어..
경품으로 하와이 비행기를 탄 꽈배기 가게 사장님이 사실은 전직 북한 공작원이었다면 어떨까요. 영화 오케이 마담은 바로 그 황당하고도 유쾌한 설정 하나로 시작합니다. 저도 몇 년 전 여행 이벤트에 당첨되어 생각지도 못한 하와이행 비행기를 탔던 적이 있는데, 첫 장면부터 그 두근거리던 기억이 고스란히 겹쳐졌습니다.평범한 일상과 숨겨진 정체, 그 간극이 주는 재미혹시 주변에서 가장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알고 보니 전혀 다른 면을 가지고 있었던 경험, 있으십니까. 오케이 마담의 주인공 미영이 딱 그런 인물입니다. 매일 꽈배기를 튀기며 동네 가게를 지키는 소상공인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10년 전 사라진 북한 공작원 목련의 과거가 숨어 있습니다. 영화가 이 설정을 풀어가는 방식은 꽤 영리합니다. 미영은 경..
영화를 보고 나서 극장 밖으로 나오는데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던 적이 몇 번이나 됩니까. 저는 처음 영화 을 봤을 때 딱 그랬습니다. 단순히 재미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에 정말 그 사람의 운명이 담겨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관상이라는 소재가 역사의 격변기와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지, 그리고 그 안에 어떤 한계가 숨어 있는지를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관상술이 역사 속으로 들어간 이유저도 처음엔 '관상 영화'라고 하면 그냥 신기한 소재를 내세운 오락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야기의 배경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이라는 사실이 꽤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계유정난이란 1453년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비롯한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역..
친구를 위해 마음을 꾹 누르다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긴 기억,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고등학교 시절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20세기 소녀를 보는 내내 가슴 한켠이 뜨겁다 못해 아릿했습니다. 1999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삐삐와 비디오테이프가 일상이던 시절, 친구의 첫사랑을 이뤄주려다 자신의 감정까지 뒤엉켜버린 보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1999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만들어내는 것일반적으로 시대극(Period Drama)은 소품과 의상으로 시대를 재현한다고들 알고 있지만, 제 경험상 진짜 시대감은 그런 외형보다 당시의 소통 방식에서 나옵니다. 여기서 시대극이란 특정 과거 시점을 배경으로, 그 시대의 생활상과 정서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장르를 의미합니다. 20세기 ..
타지에서 오랫동안 지낸 적이 있는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사람을 얼마나 무너뜨리는지. 저도 해외에 머물던 시절,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귀국이 미뤄지면서 홀로 버텨야 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 막막함이 아직도 가슴 한켠에 남아 있어서인지, 영화 덕혜옹주를 처음 마주했을 때 스크린 속 그녀의 처절함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비극적 생애 — 황녀로 태어나 고아로 살아야 했던 삶덕혜옹주는 1912년 5월 15일, 한일 병합으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난 고종이 회갑을 맞던 해에 얻은 늦둥이 딸입니다. 옹주란 왕과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가리키는 조선 황실의 작위 체계상 호칭으로, 정식 왕비에게서 태어난 공주와는 구분됩니다. 고종은 이미 세 딸을 잃은 뒤라 덕혜옹주..